즉자, 대자, 그리고 즉자적 대자
이게 말인가 방구인가. 독일어를 우리말로 옮겨 놓은 것인데, 우리말도 외계어처럼 들린다. 즉자는 독일어의 ‘an sich’를 옮긴 말이고, 대자는 ‘für sich’를 옮긴 말이다. 그리고 즉자적 대자는 ‘an und für sich’를 옮긴 말이다. 즉자는 자기 자신을 향하는 존재의 동일성이고, 대자는 타자를 향하는 존재의 분리성이다. 그리고 즉자적 대자는 자신과 타자가 함께 공존하는 것이다.
헤겔은 즉자, 대자, 그리고 즉자적 대자의 개념을 가지고 삼위일체성을 논한다. 즉자는 성부 하나님의 일이고, 대자는 성자 하나님(예수 그리스도)의 일이고, 즉자적 대자는 성령 하나님의 일이다. 헤겔은 이것을 정신이신 하나님이 자기 분화, 분리, 복귀의 과정을 이루는 삼위일체로 파악했다.
이것은 정반합의 삼단논법의 반영인데, 결국 즉자와 대자가 즉자적 대자에게로 모아지는 것을 말한다. 헤겔은 정신이 분리와 차별(구별)의 상태에서 다시 자신과 연합하고 조화를 이루는 과정을 화해라 부른다. 그렇게 화해된 정신은 정신적 공동체 안에 현존하는데, 그 정신은 성령이라 부르고, 그 공동체는 교회라 부른다. 그래서 교회(공동체)는 성령의 공동체이다.
대립되어 있는 것이 하나의 정신으로 통일되는 것은 흡사 에베소서에서 사도 바울이 ‘만물의 통일’을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헤겔의 하나의 주체나 에베소서의 ‘만물의 통일’은 언제나 각 존재의 고유성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에 대한 비판에 직면한다. 단일성(unity)을 강조하면 개별성(diversity)이 깨지기 때문이다. 개별성의 기반은 자유이다. 개별적인 존재의 자유를 지키면서 단일성을 말할 수 있을까?
교회는 하나(unity)되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가 되기 위해서 각 개별적인 존재는 어느 정도까지 자신의 자유를 희생해야 하는 것일까? 자유의 희생 없이 하나(unity)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반대로 개인의 자유를 지키려고 할 때 공동체의 하나(unity)됨은 느슨해질 수밖에 없다. 이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글을 써 놓고 보니, 이것도 말인지 방구인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