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읽는 낙서판

낙서 481. 삼위일체론에 대한 슐라이마허의 생각

카테고리 없음

삼위일체론에 대한 슐라이마허의 생각

 

삼위일체론은 “그리스도교의 자기의식(self-consciousness)에 대한 직접적 표현이라기보다는, 이 표현들을 조합한 것에 불과하다.”

 

슐라이어마허에게 삼위일체론은 신앙의 원초적 증언이 아니다. 이 교의는 원초적 계시(신론, 기독론, 성령론 등)의 여러 요인들을 함께 묶거나 종합하려는 시도이다. 그래서 그는 삼위일체론이 기독교 신앙고백의 중심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는 삼위일체론을 그의 책 <그리스도교 신앙 The Christian Faith>의 맨 마지막에 부록처럼 끼어 넣는다.

 

이러한 슐라이어마허의 생각을 깬 신학자가 칼 바르트이다. 바르트는 삼위일체 교의의 근거 혹은 “뿌리’가 성서 속에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다고 말한다. 삼위일체 사유는 이미 거기 있었던 것에 대한 분석이지, 새로운 어떤 것을 구성하는 여려 요인들의 종합이나 화해가 아니다.

 

삼위일체론에 대한 접근법을 근거로 볼 때, 슐라이어마허와 바르트는 완전히 다른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분명해진다. 슐라이어마허는 계몽주의의 영향 아래 발전된 자유주의 신학자였고, 바르트는 그것을 벗어난 신정통주의 신학자였다. 슐라이허마허는 성서의 역사비평 아래 성서의 권위가 떨어진 시대를 살았고, 바르트는 성서의 역사비평이 가진 허점을 파악한 성서의 권위를 다시 찾은 시대에 살았다. 이 둘의 근본적인 차이는 성서의 권위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의 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르트는 성서를 하나님의 계시로 보았고, 슐라이허마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은 성서와 하나님의 계시가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성서는 하나님의 계시를 가리키는 손가락이지 손가락 자체는 아니다. 이것을 구분하지 못하면, 무지막지한 문자주의로 빠지고 만다.